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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괴작이지만 수작이고, 동시에 오타쿠 애니메이션이다. 작품성이라기보단 상업성을 공략할 새 포인트를 찾은 것에 가깝지만, 작품이 가진 서사의 변주는 시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고 시장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시대에 대항하는 변주가 일본의 대중들에게 잘 먹힌 모양이다.


영상만큼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 없다. 자본이 많이 들어가기에 불특정 다수의 취향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를 잘 조율해 최상의 결과를 뽑아내는 게 영상 예술이다. 영화는 작품성을 중요시하는 감독이 대다수고, 또 작품성 높은 작품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일본 애니메이션은 상업성이 짙은 작품이 많이 나온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 층이 많은 소비시장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작품에 과도한 성적묘사와 비정상적인 대화가 통용되고, 일반적인 소비층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기피하게 만든다. 평론계에서는 이런 부분을 "마술적 사실주의(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작품관)"이라 부르지만 대중에겐 그저 한심한 오타쿠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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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 작품이 거대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한 전략이 신선하다. 일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작품 내에서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해버린다. 대놓고 반항하는 사춘기의 청소년 같은 느낌이다. 원작의 작가 "와타리 와타루"가 전작의 흥행에 참패한 후, 편집자로부터 시장 추세에 따라 러브 코미디 장르를 집필해야 성공한다는 말을 듣고 본작을 집필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아마 자신이 싫어하는 장르를 억지로 집필하게 한 시장에 반발감이 컸던 모양이다. <케빈 인 더 우즈, 2012>의 감독 드루 고더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성공한 작품을 만든다면, 둘 중의 하나다. 너무 상업적이거나 너무 작품적일 테다. 와타리 와타루는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각본가인 신카이 마코토와 정반대의 노선을 취한다. 신카이 마코토가 자신의 오타쿠 취향을 작품성으로 완성하는 반면에, 와타리 와타루는 자신의 작품성을 알리기 위해 오타쿠 취향을 넣은 것처럼 보인다. 작품 속의 세계가 자신의 거주지를 바탕으로 설계된 점이나, "하치만"이라는 주인공 캐릭터에서 보이는 자전적인 모습이 그걸 증명한다. 예술가의 사고관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가벼움이 주된 서브 컬쳐 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기에 본작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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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품적인 특별함만으로 이렇게 성공하기는 힘들다. 작품이 성공한 건 스토리텔링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본작의 스토리텔링은 세 가지 부분에서 탁월하다. 첫 번째, 러브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공감이 아닌 성찰을 이끌어냈고, 두 번째, 캐릭터 간의 이미지와 구도가 선명하고, 세 번째,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사를 반박하는 이면성이다.


작가의 반발심으로 시작된 본작의 러브 코미디는, 사실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원래 러브 코미디라는 장르는 연애에 이르기까지, 혹은 하는 과정에서의 달콤함을 독자에게 준다. 그 과정에 있는 사건이나 인물은 우연적이고 허구적이어서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물과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과 관계에서 오는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비현실성을 제하고 남은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등장인물이 가진 사랑의 달달함에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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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작은 감정을 공감하기보단 성찰하게 한다. 주인공 "하치만"을 포함해 본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이 일반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캐릭터가 평면적이면 재미가 없으므로 어느 작품에도 일반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이 모여 일반화된다면 일반적이지만 재미있는 서사가 된다. 본작이 그렇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이 자아내는 역설적 조소가 블랙 코미디가 된다.


보통,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성은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부여함으로써 완성된다. 여러 매체에서 채용하는 칠거지악이나, 보편적이지 않은 배경을 부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본작은 이것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본작의 캐릭터 구축은 덧셈이 아닌 뺄셈으로 이루어진다. 인물을 구축할 때 무에서 유로 향하는 것이 아닌, 유에서 무로 향한다. 인물들 모두 나사가 빠진 것처럼 성격적인 결핍의 상태에 있다. 결핍된 부분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껴안고, 틈새를 섬세한 한옥의 이음새처럼 잇는 것이 본작에서 보여주는 인물의 성장이다. 말하자면 성장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복구하는 과정인 셈이다. 입체적이 아닌, 음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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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나오는 주연과 조연들은 결함이 있거나, 결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것이 장치적이든, 성격적이든 간에 모두가 특별하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여동생은 일본 오타쿠 애니메이션을 비꼬는 듯한 설정을 지녔다. 아웃사이더인 오빠와 정 반대의 성격, 비현실적인 자기애는 기존의 러브 코미디 장르가 가진 결함을 비꼬는 것이다. 여러 여성에게 대쉬를 받고, 여동생도 그 연장선으로 놓는 게 그것인데, 본작의 남매묘사는 연애의 연장선이라기보단 정말로 친한 남매라는 느낌이다. 주인공의 대사와 태도도 여동생은 여동생일 뿐이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또한 본작의 여동생은 주인공을 안으로 가두는 장르적 결함을 비꼬기도 하지만, 하치만을 외부와 연결하는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결함의 느낌이 독자를 편안하게 한다. 무언가를 가지기는 어렵지만 가진 걸 포기하기는 쉬우므로, 결함을 가진 인물들을 보며 무언가를 더 가져야만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러브 코미디임에도 연애는 하지 않지만, 연애하기 위해 잘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중에 나오는 고등학교가 우등생들이 입학하는 곳임에도, 부자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이 2명이나 있음에도 딱히 그걸 내세우는 묘사가 나오지 않는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평등하고, 동시에 독자들 또한 그들과 평등해진다. 그래서 작품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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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이 비현실적인 캐릭터로부터 오는 게 본작의 매력이다. 사람들은 없는 것임에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좋아한다. 판타지와 같은 허구적 현실성이 인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본작의 캐릭터들도 비슷한 매력이 있다. 하치만이라는 캐릭터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고 섬세하다. 아웃사이더를 캐릭터성으로 내세웠지만, 사회로부터 분리된 개인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분리된 사회를 모티브로 한다. 이른바 자의적 아웃사이더다. 하치만은 혼자서 행동하고 사고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즐기지 않는다. 사람을 쉽게 생각하고 가볍게 보낸다. 언젠가 떠날 사람,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염세보다는 무관심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런 하치만의 모습은 이성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 극단적인 이성주의는 높은 자의식을 동반하기에 타인과의 관계가 어렵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 이외의 것들은 바르지 않은 것이기에 외면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전부 자신처럼 행동하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치만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최적의 결과를 산출한다. 인간관계를 포함해서, 의사결정에서도 인간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니 합리적인 판단이 나온다. 그러나 합리적이라고 해서 옳은 건 아니다. 극단적인 이성주의는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변의 것들을 돌아보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 결과주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면에서는 서로 일맥상통하지만 이성주의는 결과주의보다 나쁘다. 이성주의는 합리적인 판단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감성적인 면이 부족해 쉽게 부수어지기 때문이다. 결과주의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있지만 이성주의에는 오로지 합리만이 있다.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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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건 그 무엇도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치만의 캐릭터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작품에서 하치만의 이성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자신은 타인을 위해 최선책을 택하지만, 막상 타인의 시선에서 보면 차선책이다. 하치만은 문제의 해결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고 차선을 택한다. 해결될 수 없다면 해소하겠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타인과 협업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폭발을 끌어안으려 한다. 사건의 이목을 자신에게 돌려 매캐한 연기로 원인을 감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악역을 자처하는 것이다. 주변인물들은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고 사건이 끝나기에, 하치만 개인은 선량함에도 자신이 악을 끌어안아 악인으로 오해 받는 것을 싫어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DC코믹스의 배트맨이다. 배트맨은 악을 응징하는 악이자 고뇌하는 영웅이다. 그런 배트맨과 하치만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었고, 둘 다 영웅적인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세간에 악당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도 그렇다. 이른바 다크 나이트다.


두 인물의 공통적인 특성을 보면, 명백하게 성격장애가 있다. 강박성 성격장애가 그것이다. 두 사람은 돈이 많고 없음의 차이만이 있을 뿐 사실상 같다. 둘은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한다. 또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가차 없이 내버린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둘의 모습은 최적의 결과를 산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박성 성격장애의 가장 큰 문제는 효율성을 융통성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강박 때문에 경직성과 완고함이 높고, 최악의 악수에도 대비하는 뚝심이 있다. 하지만 악수를 피하되 상대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지도 못한다. 최고의 수는 없지만, 최고에 가깝게 다가갈 수는 있기에 그들의 강박성을 지지할 수 없다. 그들이 택한 수는 최악을 피하고자 누군가를 희생하기 때문이다. 설령 희생하는 것이 자신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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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성 성격장애의 자기희생은 정보 수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정보 수집은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읽어내고, 원인과 연관된 상대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문제는 상대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강박성 성격장애자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자신과 맞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말과 행동의 진의를 파악하려 든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불신임하는 것이다. 또한 타인과 자신을 이분법으로 가르는 동시에, 높은 자기애로 선민의식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타인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해하며,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개인 행동을 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하치만이라는 캐릭터는 일반적이면서도 일반적이지 않다. 성격장애가 비롯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고, 왕따(혹은 사회적 고립)에서 비롯된 강박성 성격장애의 모습은 매체들에서 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여타 매체에서 다루는 강박성 성격장애의 모습은 강박성을 필두로 능동적이기 마련이지만, 하치만의 캐릭터성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회피성이 더해져 있다. 예를 들어, 배트맨이 부모님의 죽음을 자신에게 돌려 구원 강박에 사로잡힌 것과는 다르게, 하치만은 왕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려 "내가 그들과는 다르므로" 처음부터 어울릴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소통의 단절감이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느끼게 만들고, 작품 내의 하치만의 행동은 거기에서 귀인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초반에는 타 인물들이 내보이는 호감을 피하던 하치만이 작품이 진행되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성장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내면의 결핍, 공허함으로 분리된 강박성을 채워 나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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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서사의 이면성은 하치만의 강박 장애에서 주로 비롯된다. 그러나 히치만 혼자서 이면성을 전부 담당하지는 않는다. 강박 장애를 가진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히치만과 같은 봉사부에 있는 유키노다. 하치만과 유키노, 두 캐릭터의 캐릭터성은 장르에 걸맞지 않게 특출난 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악을 자처하는 하치만과, 자신의 영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키노의 관계는 배트맨과 슈퍼맨의 관계처럼 보인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과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것의 이분법은 흔하지만, 일상에서 오는 소소함이 주가 되는 러브 코미디 장르에서 이분법이 장악한 캐릭터성의 대립은 흥미롭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유명한 영웅이다. 동시에 상반된 성격을 가졌다. 배트맨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악당으로 만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면, 슈퍼맨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주변이 초토화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둘 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 배트맨은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자신이 피해를 본다. 슈퍼맨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유키노 또한 그렇다. 개인의 능력도 뛰어나고 집안의 배경도 뛰어나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전부 떠맡아 능력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피해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여러 명이 희생하는 것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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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유키노의 성격은 강박성 성격장애의 갈래이다. 언니를 대외에 내세우는 집안의 정책과, 엄격한 집안 분위기가 그녀를 강박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언니처럼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언니처럼 대외적으로 나설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언니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 틀에 박힌 규칙은 감정을 억누르고 행동에 족쇄를 씌운다. 행동과 생각이 제한된 상황에서 개인의 사고관은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는다. 제한된 자유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이끌어내야 하므로 엄격하고 신중해진다. 언니를 대외에 내세우는 집안의 정책은, 틀에 박힌 규칙과 함께 유키노를 요구된 인간상에 쥐어 넣는다.


작중에서 유키노가 고뇌하는 부분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케무샤, 1980>에서 나타난 철학적 고뇌와도 맞닿아 있다. 타인의 그림자로 살면 필히 타인을 닮아가게 된다. 그러나 타인을 닮아간다고 해도 그 본질이 같아지지는 않는다. 그림자는 색이 없는 존재에 불과하고, 본체가 있어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 존재한다. 유키노가 가지는 고뇌는 그것이다.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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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의 실존에 대한 고뇌는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하치만의 자기파괴가 내부로 향하는 것처럼, 유키노의 자기파괴는 외부로 향한다. 언니처럼 되어야 하면서 동시에 되지 말아야 하는 삶은, 자신을 그 무엇도 아니게 한다.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러한 행동은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다. 그 파괴력이 냉소와 관철로 나타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것들이 그녀를 압박한다. 진짜가 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도 하지 않고, 말투도 냉철해 친구 관계도 없다. 그녀는 고독하다.


연쇄적 파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끌어안기 때문에 일어난다. 하치만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폭발한다면, 유키노는 모두를 구하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하나를 구하면 뒤로 부딪히는 것들이 폭발하고 만다. 둘 다 문제 해결의 좋은 방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세상에는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면 문제 해결은 늘어난 손만큼 수월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타인에게 손을 뻗지 않는 것은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다. 손을 내밀고 난 뒤의 결과가 두려운 거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 자신이 없고,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할 것 같아서 두려운 거다. 이렇게 하치만과 유키노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민한다. 생각의 방향이 다른 만큼 크게 대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강박은 그들을 하나의 캐릭터로 묶기도 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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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만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친구들과 그 주변인물도 그것에 일조한다. 히치만과 유키노는 봉사부 소속인데, 두 주인공 사이에 있는 부원으로 유이라는 인물이 있다. 유이는 초반에 전형적인 서사 구조의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덜렁대는 성격에 명랑하고 순수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되며 평면적인 캐릭터성은 입체적으로 바뀐다. 어떻게 보면 이런 입체성이 의존성 성격 장애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치만과 유키노에 비해서는 대인관계가 원만한 편이지만, 타인에게 과할 정도로 의존적이다. 특정 무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항상 소외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끼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주변의 눈치를 보고 말을 아낀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선택을 고민하기 때문에 성격이 우유부단하다. 두 사람과는 달리 자기애가 부족해 타인에게 쉽게 휘둘린다. 두 사람처럼 주변에 깊은 친구 관계가 없다. 그래서 지독한 고독감에 시달린다.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사회 구조 변화에 따른 세 가지 인간상을 제시했다. 전통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전통 지향형, 가족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내부 지향형, 사회적 관계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외부 지향형이 그것이다. 어느덧 60여 년이 지나며 사회는 고도화됐고, 관계는 집약되어간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사회화된 관계 속에서 고독해진다. 오밀조밀한 인간의 파도 속에서 그가 주창한 "군중 속의 고독"은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은 모두를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독하다. 함께하고 싶으면서 홀로 있고 싶은 마음, 양가감정에 스며든 지독한 고독에 인상을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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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외로움은 한 끗 차이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결핍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자신이 위치한 곳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관계의 안에서 느끼는 것은 고독이요, 밖에서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다. 이러한 결핍과 고독은 캐릭터들 간의 이미지와 구도를 교차하며 보완된다. 유이는 고독했기 때문에 우연히 찾게 된 봉사부에 가입했을 것이다. 봉사부의 두 인물이 느끼던 외로움이 자신의 고독과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둘이 상통하기에 사회로부터 분리된 두 사람, 하치만과 유키노를 잘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좌우의 방향성을 합쳐 앞으로 나아간다면, 유이는 그 둘의 방향키를 잡아준다. 반대로,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못하고 방황하는 유이의 발걸음을 앞으로 향하게 하는 건 두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캐릭터들의 조합은 소수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 삼인방과 소통하는 조연들, 남들과는 다른 취미를 가진 두 사람 요시테루와 히나,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남자 사키, 그리고 결핍된 여러 인물은 주류 사회에서 분리된 어긋남을 모아 하나의 인간 사회를 구성한다. 이러한 인간 사회에서 만들어진 군상은 결핍으로 시작해 조화로 완성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듯, 부족하므로 서로 보듬고 합쳤을 때 딱 들어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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